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킨다는 측면에서 디자이너와 기획자는 참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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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이너인데도 평소 종이와 펜을 준비하지 않고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아이디어는 마치 '사고(accident)'처럼 우연히 다가온다.재채기를 하고 싶다고 재채기가 나오는 건 아니다. 아이디어가 나왔으면 하는 순간 머리가 굳어진다. 좋은 아이디어는 언제 어디서나 나올 수 있다.스케치를 위해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은 중고등학교 미술반 시절 밖에 없다. 디자이너가 되고 나서는 작정하고 디자인 스케치를 한 적이 없다. 쇼핑하는 도중에,비행기 안에서,식당에서 고객과 얘기하다가 갑자기 생각난다.준비한다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는 않는다. 준비가 사실은 어렵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냅킨에다 스케치를 하게 된다. 스케치 못할 때는 머릿속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때는 아이디어가 날아가 버릴까 조심스럽다. 기회만 되면 머릿속으로 디자인을 스케치 한다. 하루 혹은 한시간만 지나도 아이디어를 잊어 버린다. 그래서 디자인 아이디어를 보물 처럼 생각한다.”

- 평소 “시장에서 안팔리는 디자인은 실패”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시장에서 먹히는 디자인을 찾으려면 고객의 마음 속을 알아차리는 능력 등이 필요하다. 어떻게 고객과 미래, 큰 흐름을 연구하나.

“디자인은 잘 됐는데 팔리는 않는 경우는 없다. 안 팔리는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 디자인의 목적은 기업에게 이윤을, 소비자에게는 만족을 가져오는 것이다. 진정한 디자인은 좋은(good) 디자인이 아니라 적절한(right) 디자인이다. 보기 좋고 쓰기 좋고 만들기도 쉬워야 한다.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일단 보기 좋아야 하고 편의성도 높아야 한다. 여기에다 생산하는 방식도 경쟁력 있게 만들어야 한다. 적절한 디자인은 비쌀 필요가 없다.

디자이너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꿰뚫어야 한다. 그래야만 소비자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오버 디자인’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부품도 넣지 않는다. 이런 제품은 히트상품이 돼 수백만,수천만명이 구매한다. 대량 구매를 통해 확보한 규모의 경제 효과로 가격 경쟁력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마케팅 비용을 따로 안들여도 된다. 보기 좋고 쓰기 좋고 만들기 쉬워야 한다는 3박자가 맞지 않으면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

- 좋은 디자이너의 요건은 무엇인가.

“디자이너는 정의하기 애매한 직업이다. 순수 미술가는 물론 엔지니어, 상품기획자와도 다르다. 디자이너가 어떻게 모든 역량을 다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을 많이 갖는다. 하지만 가능하다. 물론 학교에서 배우는 것 만으로는 완벽하게 되기 어렵다. 세상 돌아가는 것은 보면서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연륜과 열정, 모험심,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의 가슴에 들어가 미래를 짚어봐야 한다. 어려운 직업이지만 보상도 그만큼 크다.” 

- “디자인은 뛰어난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다”고 자주 강조했는데.

“디자인은 가장 전문화된 직업이다. 어느 고객사의 한 CEO는 ‘디자인이 너무 어려워서 쉬워보이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일반인들은 디자인이라는 말을 쉽게 쓴다. 그 용어에 대한 전문성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디자인은 소수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디자인은 예술과 다르지만 창조의 과정은 다를 게 없다.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쓸 때 여러 사람이 같이 하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한국에선 디자인이 팀 단위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기업이 디자인상을 휩쓸고 고수익을 내는 디자인을 만들어 낼 때 기업 얘기만 하지 정작 누가 디자인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월드컵에서는 안정환, 차두리가 잘 해서 승리했다고 얘기한다. 그런 스타들 얘기를 들려줌으로써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하게 되고 축구에 꿈을 키우는 것이다. 디자인과 디자니어의 가치에 대해서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

- 나이가 들어서도 디자인을 계속 할 수 있는 비결은

“디자인에게 필요한 연륜을 예로 들겠다. 10년전 얘긴데 이탈리아의 유명한 디자이너가  80세 생일을 맞았을 때 기자들이 질문을 했다. 그때 그는 ”이제야 디자인을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굉장히 어려운 분야다. 성공을 하려면 평생을 걸어야 한다. 운동선수보다는 롱런할 수 있다. 완숙도는 계속 올라간다. 나는 평소에도 나는 내일 이제까지 것보다 훨씬 나은 최고의 디자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보라. 자동차, 전자제품도 계속 좋아지고 있다. 디자이너의 나이는 핸디캡이 아니다. 오히려 축복이다.

디자이너는 고무줄 나이를 가져야 한다. 어린 사람도 알고 윗 사람도 만나야 한다. 소비자의 가슴 속에 들어가 봐야 한다. 아이리버 MP3 타겟 마켓이 20대 전후라면 그것을 이해해야한다. 디자이너는 삶이 즐겁다. 나이가 들수록 승진하고 관료화되는 것이 한국적인 문제다. 디자인 분야 뿐 아니라 엔지니어도  20,30년 되도 본인의 흥미없으면 그런 보직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게 서구적 사고방식이다. 국가적으로 디자인을 부흥시켜야 할 시점이다. 소프트 파워에 힘을 실어야 한다. 그 속에는 한류도 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 문화 사업에도 힘을 실어야 한다. 하드웨어에서 더 이상 갈 길이 없다. 거기서 남들이 만드는 것을 만들면 레드오션으로 가는 것이돼버린다. 중요한 것은 기업문화다. 솔직히 이노디자인 만든 직후인 20년전 처음 출장 와봤을 때나 지금이나 한국의 기업문화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부장이 돼야 하고 진급을 해야 하는 문화다. 이런 환경에서는 개인 플레이를 용납 못하고 스타 디자이너를 키우지 않는다. 한국의 숨막히는 기업문화다. 진정한 소프트 강국이 되려면 사람, 기업! 이 바뀌어야 한다.  유연해 져야만 소프트 강국으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