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핀은 볼링 핀 10개 가운데 5번 핀을 말한다. 볼링에서 첫 구를 던질 때 5번 핀을 겨냥하듯이 입소문 마케팅에서도 먼저 쓰러뜨려야 할 킹핀이 있다. 고객 스스로 여러 명에게 소식을 전한다고 하여 '빅마우스'라는 재미난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편 『입소문으로 팔아라』의 저자 엠마뉴엘 로젠은 입소문이 잘 퍼지는 10가지 산업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분야에 따라서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오피니언 리더 계층이 조금씩 다르다고도 할 수 있는데, 각자의 레인에 맞게 입소문의 킹핀을 향해 첫 구를 굴려 보자.

자동차 관련 제품 - 영업 및 AS 직종인들을 공략하라

자동차 전문 리서치 회사인 마케팅인사이트(www.mktinsight.co.kr)는 2004년도에 새 차를 구입한 소비자 1만 311명을 대상으로 지난 1년 동안 자동차를 타면서 받은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했다. 스트레스를 가장 적게 주는 자동차 1위로 SM5가 뽑혔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2위에 같은 메이커의 SM3가 뽑혔다는 것이다. 르노삼성이 확고한 경쟁 우위를 확보한 지 벌써 4년째다.

4년 전인 2000~2001년만 해도 후발주자로 크게 뒤져 있던 르노삼성은 택시 운전기사를 중심으로 한 입소문 확산에 주력했다.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차를 몰고, 가장 바쁘게 달리는 사람들이 선택한 차라는 믿음이 현재까지 르노삼성의 독주를 가능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개인택시 기사는 차를 많이 사용하는데다가 자신의 차이니만큼 차를 소중히 여긴다는 인식이 SM5 택시의 질주를 가능하게 했다.

자동차뿐 아니라 주유소와 엔진오일, 타이어 등 자동차 관련 소모품은 모두 입소문이 가장 강력한 구매 요인이 되는 제품들이다. 차량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은 탓에 ‘어느 브랜드의 어디 지점에 가서 기름을 넣었더니, 확실히 오래 가더라’는 비방이 있는 운전자들도 많다. 택시기사 외에도 차를 타고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영업사원과 AS 관련 종사자들이 자동차 분야의 킹핀이 될 수 있다.

IT·하이테크 제품 - 얼리어답터들의 입소문을 활용하라

DC인사이드(www.deinside.com), 세티즌(www.cetizen.com), 모니터4유(www.monitor4u.com)는 각각 디지털카메라, 휴대폰,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신제품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사이트 가운데 하나다. IT나 하이테크 제품은 기술력이나 사용법에 대해 소비자가 알기 어려운 탓에 입소문 의존도가 높은 업종이다. 또 이 분야의 특성상 변의 속도가 빠르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퍼뜨리는 사용자들이 많기도 하다.

제품의 주요 타깃층은 10대~20대라고 할 수 있으나 입소문의 킹핀은 꼭 이 계층과 일치한다고 할 수 없다. 『마케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폴 스미스는 '이노베이터'라는 말을 사용했다. "한 조사를 보면 소비재 시장에서 신제품을 처음으로 사용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는 사람이 약 2.5%로 매우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소비자들에게는 오히려 제품에 대해 교육하기가 더 쉽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항상 혁신적인 신제품을 구매하는 모험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남보다 먼저 신제품을 즐기고 소개하는 것을 즐기는 일종의 얼리어답터인 2.5%를 만나기 위해 부문별 온라인 커뮤니티를 찾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 분야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IT 업종 종사자 등 해당 제품을 많이 쓴다고 해서 반드시 얼리어답터 성향을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화되고 첨단화된 분야인 만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이 아니라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 종사자들이 많아서 초기 빅마우스 노릇을 담당하기엔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 책, 식당 등 여가 분야 - 특정 계층보다 평범한 사람들을 공략하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하 히치하이커)]라는 영화가 있다. 8월 말 종로의 예술영화 전문 상영관 필름포럼에서 단관 개봉한 작품으로, 두 달이 안 되는 기간에 단관 개봉으로는 놀라운 숫자인 1만 5천명의 관객을 모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좋은 영화라는 입소문을 듣고도 아직 못 본 것을 아쉬워하는 관객들이 많아 메가박스에서 연장 상영되기까지 했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다양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입소문을 내기에 좋은 분야가 문화산업이다. 친구, 애인, 가족과 함께 밖에 나가서 무엇을 먹고 어떤 것을 볼지, 짬짬이 나는 시간에 무얼 읽을지 자기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묻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나 책, 맛집 등의 입소문 전파자는 다른 분야와 다르게 특정 계층에 집중하기보다 모집단에서 표본을 추출하듯이 무작위로 선발하는 것이 좋다. 논리적으로는 분석할 수 없는 '취향'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고객의 반 수 이상이 주변의 추천에 의존하여 선택한다는 수치를 넘어서서, 그 후 추천인과 자기 취향을 가늠하는 비교 과정을 꼭 거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부류의 영화를 좋아하면 저런 분위기의 식당에 간다’는 식의 관계를 파악하여 특정 집단을 노리는 방법이 있다.

미용이나 건강 관련 제품 - 예쁘고 건강한 사람들의 입소문을 활용하라

9월 초, GS홈쇼핑에서 방송 세 시간 동안 60억 원의 매출을 올린 사상 초유의 상품이 나왔다. 1천억 원 돌파 기념 특집방송에서 또다시 기록을 세운 이 상품은 '김영애 황토솔림욕'이다. 연예인인 김영애 씨의 인지도가 한몫했겠지만 초기의 부진을 생각할 때 ‘피부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입소문이 얼굴에 하는 팩인 이 제품을 살렸다고 하겠다. 김영애 씨 본인도 ‘예의상 구매한 연예인들이 사 놓기만 하고 쓰지 않을 때 한번만 써보면 알 텐데 하는 마음에 너무나 답답했다’고 말한다.

미용이나 건강식품 등은 입소문을 많이 타는 분야다. 특히 외관상 눈에 띄기 때문에 일상에서 대화를 주고받는 일도 많다. 외모와 건강에 대한 관심은 젊은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뭐 좋은 방법 없을까?"라는 질문이 이만큼 많은 곳도 없을 것이다.

흔히 이 분야에서는 여드름이 많던 얼굴이 깨끗해졌다거나 잠을 자도 피로가 남았는데 씻은 듯이 사라졌다는 등의 전후비교가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이런 '변신 사례'를 홍보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들이 입소문의 킹핀이 되기는 사실상 힘들다. 건강이나 미용은 단시일 내에 성과가 나오기보다 오랜 세월 계속 관찰해야 효능을 알 수 있기에 출시 직전이나 초기 단계에서는 타고난 피부미인이나 건강 체질인 사람들이 빅마우스가 된다. 피부관리실이나 헬스클럽에 다닐 정도의 관심을 있으면서도 이미 건강하고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의 '유지 비결'이 포인트다.

육아와 생활 관련 분야 - 살림 솜씨 좋은 주부 9단을 찾아라

아토피 없애는 비누,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 집에서 쓰는 가전제품 등 '아줌마'는 가장 강력한 구매자이자 빅마우스이다. 웬만한 입소문 성공신화에는 주부들이 있다. 어느 학습지가 좋은지, 어떤 학원의 누가 잘 가르치는지 아이들과 관련한 것이라면 엄마들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것이 없다. 또 "내가 어제 새로 나온 프라이팬을 써 봤더니 참 좋더라.", "이 가구 예쁘네, 어디서 샀어." 등 생활 곳곳에서 쉬지 않고 입소문을 주고받는다.

그렇다고 해도 주부가 빅마우스라는 말만으로는 왠지 부족하다. 자녀의 연령, 생활수준, 사는 지역에 따라 주부들의 개성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입소문에서 주부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킹핀은 누구일까? 엄마들의 수다를 가만히 들어보면 흥미로운 것이 많다. 누구 엄마는 30년간 살림만 했어도 여직 국간을 못 맞춘다거나 어느 집 누구는 겉보기와는 달리 손끝이 여물고 살림솜씨가 야무지다는 등 그들 나름의 평가 기준이 있다.

여기서는 주부들에게 인정받는 '주부 9단'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알음알음 알아내는 것이 힘들다면 인터넷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가공식품으로 건강한 아이 간식 만들기, 초등학생 저학년에게 좋은 동화, 알아두면 좋은 음식저장 노하우, 돈 적게 들이고 집안 커튼 바꾸기 등 세분화된 주제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주부들이 있다. 꼭 유명하지 않더라도 그만큼 해당 분야에 안목이 있고 남과 공유하고 싶은 열정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이나 제품 특성에 따라 접근해 봄 직하다.

모든 분야 - 가장 좋은 킹핀은 직원과 기존 고객

모든 분야에서 가장 좋은 킹핀은 내부 직원과 기존 고객이다. 기업과 제품을 잘 아는 사람, 이미 써 본 사람이 계속해서 쓴다는 사실이 일반 고객들에게 깊은 신뢰감을 준다. 그냥 사람들이 많이 쓴다거나 남들이 좋다는 것만으로는 입소문이 나지 않는다. 무수한 정보가 쏟아져 나오다 보니 소비자들은 소문을 한 번 더 검증하거나 숨은 단점을 알아보려고 한다.

혹시 내부 직원들이 공짜니까, 할인을 받으니까 생각 없이 회사 제품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자. "집에 와서까지 우리 회사 제품을 봐야 해."라는 푸념이나 "저 식당 주인은 자기네 반찬은 식구들한테 절대 안 먹인대." 하는 악소문은 실제로 빈번히 들린다. 고객이 되어서도 돈을 내고 해당 기업의 제품을 쓸 것인지, 열렬히 입소문을 내고 다닐 것인지가 중요하다.

새 고객에 눈이 멀어 옛 고객을 놓치고 결국은 후회하는 기업도 많다. 그러나 써 본 사람이 최고의 킹핀이다. 오랜 세월 쌓여 온 사용 노하우와 애프터서비스, 불만 해결 만족도 등 중소기업이 취약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나서서 방어해 줄 수 있는 원군이기 때문이다. 지금 함께하는 고객을 최고의 파트너로 만들어라. [중소기업웹진 기업나라 김희연 객원기자 / 기사 원문보기]